
시끄러운 침묵의 밤.
w. 익명A
처음에 이 사건을 맡았을 적에는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어온 사건,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돈을 번다고 행복해 하던 사무실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한숨을 내뱉었다. 머리를 긁었다. 그 겨울, 나는 시에서 주관하는 마을 행사에서 떡을 간단하게 먹은 다음 그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떡을 먹은 것이 모두 올라올 뻔 했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떡인데 자신들의 주거 사업을 위해 변호사 양반이 힘을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혼자 오래 살았던 어르신들은 매일 보단 쭈글쭈글한 주름에서 벗어나 저를 상대하는 것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던 듯하다.
귀금속 가게를 지나면 커피를 파는 카페 하나가 위치를 잡고 있었다. 그 곳에서 아는 선배를 만나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야, 이게 누구야? 만나기 그렇게 힘들다는 서영 씨 아냐? 송 교수님을 빼닮았네."
"그 노친네가 내 부모라도 됩니까? 뭘 닮아요? 그래서, 왜 부르셨어요?"
의자에 기대 편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문서를 확인했다. 사건 내용은 뻔했다. 누군가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고. 증거는 충분했다.
"승소할 가능성이 없잖아. 이 사건. 돈이 급하다고 아무거나 주면 어쩌자는 겁니까? 살인 용의자 … 증거 또한 존재하고. 그럼 질 게 뻔한데 굳이 해야 해요?"
"그럼 참한 범죄자 하나 꼬셔서 살인 저지르라 하고 피해자 데려오던가. 더운밥이 어디서 막 솟냐? 찬 밥 훅 데워 먹어야지 어쩔 거야?"
"뭔 말을 또 그렇게 해요? … … 하 진짜. 알았어요. 김밥 외상 값 갚으려면 어쩔 수 없지."
"송 교수님이 제자 하나는 잘 뒀다니까. 여자 같지 않게 당당하고 말이야."
"비교질이나 할거면 꺼져요. 짜증나게 하지 말고. 그럼."
몸을 일으켰다. 저 새끼는 누가 안 잡아가나? 그 곳에서 나와 출구에서 이어진 통로에 서서 휴대폰의 문자 목록을 뒤적였다. 겨울의 날씨가 매섭다. 번잡스럽게 세탁물을 가지고 왔다갔다하는 사람, 과제를 하기 위해 바닥에 엎드려 과제를 하는 사람, 창가에서 대화중인 사람,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 … 많았다. 자료를 다시 본다. 미간을 찌푸렸다. 살인을 저지른 용의자의 얼굴을 보니 잠시 참담한 심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겨울의 냉기가 숨을 턱 막히게 하는 듯하였다. 안경집을 급히 꺼냈다. 안경집이 깊숙하게 처박혀있던 가방 속에서 거울 하나가 떨어졌다. 땀이 솟았다. 모든 것을 챙겨 빠른 걸음으로 출구를 빠져나가 사람들의 무리로 뒤섞여 버렸다. 나는 회색이다.
철로 된 문이 잠기고 어두운 방의 불을 켰다. 방안에 남겨진 상태. 불을 켰지만 어두운 환경에서 어두침침한, 밀폐된 공간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서류상으로만 봤던 얼굴을 마주하였다. 조금은 어려보이지만 나이는 비슷한 여자. 여자는 고개를 수그리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기도를 하는 듯 보였다. 살인사건을 저질러놓고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기도를 하는 모습이 참 당혹스러웠다. 서류를 넘겼다. 골목길에서 남성을 죽인 여자. 이유는 불명.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남자와 여자는 연관이 있었다. 제약회사에서 서로 일하던 시절 친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상사와 그 아래 있던 사람. 죽일 동기는 많았다. 봉급 문제도 있을 것이고 그 아래 사람에게 안 좋게 대하는 것도 있었겠지. … …. 서류를 넘기면서 무언가 한마디 말을 할까 하다 볼펜으로 톡톡 소리만 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아주 작게 읊조리던 들리지 않는 기도제목이 잠잠해지고서 노란 서류철을 내려놓자마자 상대는 입을 열었다.
"… ….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형사님."
"변호사입니다."
이 정도 상황까지 갔는데 체념은커녕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에 고개를 젖히고 미간을 좁혔다. 미칠 노릇이다. 단호하게 결백을 주장하는 모습이 치졸하게 느껴졌다. 피해자가 존재하고 이미 시체도 존재한다. 증거도 나왔다는데 그녀는 계속 억울함을 주장한다. 귀찮은 일이다. 한숨을 푹 내뱉은 다음 말을 이었다.
"당신이 아니면 누굽니까? … … 증거도 다 있어요. 허튼 수작,"
"제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내가 그걸 알고 있으면 당신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이곳에서 이미 나갔을, 아니. 우리는 만나지 않았겠죠. 저는 아니에요. 정말 아니란 말이에요. 결백해요. 진짜 제가 죽인 게 아니에요.… …."
"정신적으로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거면 병원에 가지 그래요. 여기가 상담소인줄 알아?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만 읊으면 내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나봐. 내가 할 일을 하고 외상값 갚기 위해서 왔지만 결국 살인자 편들었다고 욕을 먹을 게 뻔하지. … … 그리고 너 말이야. 자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제가 아니라,"
"그럼 누구냐고. 자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아니라고만 하면 뭐 해결 되는 거 같아? 증명할 수 있어? 너 술까지 마셨고, 평소에 그 사람이 너한테 안 좋게 대했다면서. 평소 악의적인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주변 사람들 진술까지 확보가 되었다니까."
볼펜 끝으로 머리를 긁었다. 골 때리네. 여자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손을 다시 모으고 기도를 하는 듯 보였다. 그래. 기도해라 기도해. 나는 절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부처님. 이걸 어찌할까요.
"그러니까, … 그러니까 제가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 해야 되는거에요?"
"… …."
"난 결백 … 해요. 내가 하지 않은 걸,"
"내가 당신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게 끝까지 딱 잡아 땐다고 바뀌는 건 없어. 아-, 혹시 판사를 믿어? 관대하신 판사님은 당신이 증거를 내놓지 않았는데도 무죄를 선고할거 같아? 당신이 국선 변호사인 나를 부르는 게 대견하긴 한데 말이야. 그래봤자 될 건 하나도 없는 건 알고 있어? 너 뭘 하다가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너가 하지 않은 거라고 막 떼를 쓰면 될 건 하나도 없어."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네?"
여자의 얼굴과 얼굴을 마주했다. 심장이 다시 멎을 거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탁자와 연결된 수갑을 내려 보다가 계속해서 우는 모습이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입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했다. 다시 눈이 마주하였다. 머리카락이 흐트러지고, 눈의 빛은 아직 빛을 잃지 못한 듯. 형광등의 빛에 반사되어 더 눈물이 돋보였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요 … …. 그 사람이 나오라고 그랬어요. 연구 결과로 인해 할 말이 있다고 해서 갔던 건데 …. 그 사람이 오지 않아서 그 사람의 집으로 갔어요. 근데, … …. 근데. 죽어있었단 말이에요. 술이요? 난 술을 먹지 않았어요. 필름은 끊길 것도 없었다니까요? 나는, 나는 억울하단 말이에요 … … !"
"… … 너."
"… 제발, 믿어주세요. 저는 …."
면회 시간이 끝나자 경찰들이 들어와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막막해지는 가슴. 잠시 대화를 더 해볼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증거도 없고 이득도 없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다. … …. 애초, 그 얼굴을 마주하니 할 말이 뚝 끊겼다. 나오는 길에 벽을 등에 기대고 잠시 한숨을 내뱉었다. 심장이 뛰었다가 잠잠해졌다. 미간을 찌푸리다가 심호흡을 하였다. 차를 향하고 차에 앉아 핸들에 얼굴을 기댔다. 잠시 숨을 고르게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시선을 돌리니 차, 그 옆에도 차. 양 옆에 차를 둔 상태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입술을 꾹 깨물다가 놓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만남을 다시 가질 수 없었다. 그녀는 이상하게 재판일이 다가오는데 결백을 주장하던 모습과 다르게 면회를 취소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 사이 새로운 일을 몇 개 맡으면서 내 머릿속에서도 이 일은 거의 지워져만 갔다. 점점 몰려오는 일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 사이 친모의 장례비와 자살한 친모의 밀린 모텔비까지 정산했다. 빚의 원금과 이자도 갚았다. 카드 회사에 전화를 돌려 신용 한도에 맞게 빌려가고 있던 친모의 빚을 모두 갚은 것이다. 자살한 친모를 떠나보내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서 친부의 죽음 또한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절연한 사이. 이제 사람을 만나는 게 더 꺼려지던 찰나였다. … …. 사실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경찰 측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잠시 통화를 하다 밖으로 향했다. 서류철이 들은 가방을 잘 챙겨 급히 화장품을 챙겨 화장을 하며 그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입원했다.
급히 달려가 면회를 위해 교도소로 갔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너무 심하게 맞아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유는 같은 교도소에 있던 사람들의 폭력이라는데 … …. 그녀는 병원 침실에 수갑이 묶인 상태로 누워있었다. 경찰이 모두 나가고 그녀는 누운 상태로 눈을 뜨고,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했다. 입술을 꾹 다물다가 노란 서류철을 보여주며 손을 잠깐 바라보다 의자에서 말을 이었다.
" … 만나주지 않더니 이제서야 만나주네요. 할 말도 있었는데 잘 되었고요."
"… …. 내가 했어요."
"… 예?"
"내가 죽였다고요. 그 남자."
"… 맞고 나니까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나 봐요?"
"그니까 나가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간을 찌푸렸다. 눈가가 부어있고 입술이 터진 그녀. 그녀는 숨만 겨우 내뱉으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유난히 음푹 들어간 손 끝. 뼈대가 안 그래도 가늘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얇아 보이는 신체가 그제서야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다 마저 서류를 읊어줬다. 이름을 다시 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잠시 후, 그녀를 바라보면서 서류철을 덮었다.
"… …그럼. 쉬어요."
그러자마자 여자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을 꾹 잡았다. 그리고서 눈이 다시 마주한 여자는 숨을 몰아 뱉다가, 나에게 입을 열었다.
"… … 할 말이 있어요."
"뭔데요?"
"… …. 이름, 이름 알려줘요. … 학교랑."
"매화 여자 고등학교, 권인숙이요."
그 말에 그녀는 나를 놓았다. 그녀는 눈물을 계속해서 흘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을 바라보다 머리를 정돈해줬다. 이제 여자는 나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잡지도 않았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힐끗 병실 안을 둘러보다 냉장고 안에 가지고 다니던 박카스 하나를 넣어뒀다. 손끝에서 박카스를 내려놓기 어려웠다. 주변에 너저분하게 머리카락들이 흩날리고 종이들이 흩날리는 거 같았다. 서류철을 꽉 잡고 살짝 꾸기려다 내려두고 가방 안에 다시 위치를 잡게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병실 밖으로 나가 남성들이 있는 것을 바라보다 계단으로 내려가던 와중, 비상구 밖에 위치했던 벽을 마구잡이로 찼다. 흉하다. 나는 빨간색이다.
… …
… … ….
… ….
그녀는 죽었다.
교도소에 있던 시절, 계속되는 폭력으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후로 잠시 쉬었다. 사무실 내에서 새로운 변호사가 그렇게 일을 잘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휴가를 냈다. 해변가에 있는 펜션을 빌렸다. 돈이 좀 많아졌다. 나는 그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기대 잠시 생각했다. 그녀가 죽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삐걱거리는 바닥을 꾹꾹 눌렀다. 한참을 뒤척이는 거 마냥 움직여댔다. 산보를 하려는 듯 움직였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여자다. 그녀는 학교에 다닐 적에 나를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여자다. 내 머리에 도시락을 던지고, 목을 조르기도 하였으며, 손가락을 부러트리거나 머리카락을 다 뽑으려고 했던 여자다. 나의 발을 밟기도 했다. 우리는 사랑했었다. 그녀도 나중에는 알았나보다. 우리 둘은 사랑했던 사이였다. 헤어짐과 동시에 나의 정체는 모두 소문이 나고 까발려졌으며 그로 인해 이별했다. … … 그 사실을. 그녀도 눈치를 챘다. 그 이후 우리는 병원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에 대한 조사 내용, 수사 내용이 꾸며낸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 모든 것이 조작된 증거임을 알았지만 차마 밝히고 싶지 않았다. 애정과 사랑, 이 모든 긍정적인 감정은 부정적으로 변하기 충분했으니까 말이다. 맥주 한 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통장으로 입금 된 돈을 한참 바라봤다. 어마어마한 액수. 내가 평생 일을 해도 감히 만질 수 없는 돈이었다. 목격자의 진술들이 모두 다른 점. 진술이 모두 틀린 점. 그런 것들을 모두 알았지만. … …. 이런 내용은 모두 여백에 불과하다.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떨떠름했다. 이 모든 것이. 나는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인 것도 알지만 말을 하지 않은 뻔뻔한 놈인 것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던 분홍색과 흰 색의 색은 검게 물들어버린 지 오래다.
그 날의 기억들을 모두 이곳에서 잠재우고 나는 현실로 돌아가겠지. 그 이후로 너에 대한 흔적을 모두 지워낼 것이다. 너의 목소리를 잠시 생각하다 잊기 위해 이어폰을 꼈다. 이어폰에서는 자연의 소리와 뒤섞인 피아노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저 오래도록 조용한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