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원의 논문심사를
두 번이나 해서 위경련을 얻었는데
5년 전으로 회귀해서
다시 졸업 논문을 써야한다구요
w. 나무
내 이름은 히스페리아다. 주관적인 기준으로는 4년 전이고 객관적인 기준으로는 올해 학술원을 졸업한다면 학술원 졸업자들의 공통 성. 안테티움을 받아 히스페리아 안테티움이 될 예정이다. 참, 주관적인 기준이란 내가 겪어온 시간을 의미하고 객관적인 시간은, 그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간과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들의 개념인 절대시간을 의미한다. 주관적인 기준과 객관적인 기준을 들어 시간을 표시한다는 것에서 눈치 챘을지 모르지만,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다. 잠깐, 이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 아직 사람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온다' '돌아오다' 등의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게다가 난 그냥 회귀한 것도 아니란 말이다! 아무튼,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회귀했다. 4년 전으로. 내가 졸업 논문을 쓰던 중으로. 한 번 곱게 돌려보내져서, 일 년간 스트레스성 위경련으로 개고생 하던 학술원 졸업 학년으로. 나는 차마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 아! 테페리시여! 이런 ■■같은 상황이라니, ■■!“
"아, 뭔데, ■■! 왜 욕하고 ■■이야, ■■■아!“
"죄송합니다. 주무십쇼, 리디아님.“
내 방 안쪽에서 들린 거친 욕설과 짜증 어린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내 하우스메이트이며 룸메이트인 리디아는 부모님을 따라 어릴 때부터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자랐고, 덕분에 모든 지방의 사투리를 능히 사용할 수 있으며 욕설이 수준급이다. 나는 리디아의 신경을 거슬려서 욕 퍼레이드의 참가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부엌에 있는 커다란 식탁 겸 탁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지, 나는 부엌에 앉아 있었다. 식탁에 흐트러져 있는 수많은 종이, 교재, 펜과 필기 노트……. 아연했다. 회귀라는 엄청난 사실을 겪은 충격이 가라앉자 현실이 날 뒤덮었고, 분위기를 봐서는 당장 내일인 시험과 시험이 끝난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하는 논문 계획서가 떠올랐다. 논문. 졸업논문을 세 번째 써야 한다는 사실도 모자라서 내일이 시험이라니. 흐릿한 눈으로 필기 노트를 보니 '마법물리역학' 이었다. 문득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아 떨리는 손으로 눈가를 더듬어보니 착각이었다. 눈물을 흘리고 싶다는 방증일까.
사실은 회귀니, 뭐니 다 뇌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가 나한테 장난으로 환상 마법을 썼는데 레드시커 공작가에서 너무 구른 나머지 정신력이 취약해져서 정신방벽을 뚫고 마법이 걸린 게 아닐까? 아무튼, 이게 사실이 아니고 싶었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이 거짓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팔로 식탁을 짚었다. 의자를 집어넣고, 침착하게 춤을 췄다. 학술원 시절의 나는 춤을 추지 못했으나 졸업하고 레드시커 공작가에서 일을 할 때는 어쩌다 보니 춤을 잘 추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 취미 생활도 가질 수 없을 만큼 팍팍한 노동환경과 휴가는 안 주면서 파티를 열어주는 것이 복지라고 생각하는 상사 탓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잘 추지? 이것도 꿈이라서 그런 건가?
울상을 짓고 욕하며 웃고 춤을 추던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방 밖으로 나와 한바탕 욕을 퍼부으려던 리디아와 눈이 마주치고는 인정했다. 이건 현실이다. 나는, 진짜, 정말 진짜로, 회귀한 것이다. 이런 ■■! 솔직히 아까까지는 '유후~. 이게 뭐람~. 회귀라니 소설 주인공 같은데~?' 같은 생각으로 룰루랄라 했으나 지금은 현실이 강하게 자기주장을 시작하자 정신을 놓고 싶었다.
리디아는 같이 집을 쓰는 사람이 7명인 집의 부엌에서 한밤중에 울면서 춤을 추는 나를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과 표정은 '이 또라이 자식, 드디어 돌아버렸구나.' 하는 것 같았다.
"리페 이 미친놈. 드디어 완전 돌아버렸냐?“
음, 역시 내가 리디아를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부터 말할지 갈피를 잡다가 사실을 말하려면 굉장히 긴 대서사시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일이 마법물리역학 시험이라니.“
"그보다 왜 춤을 추고 있던 거야?“
"현실을 잊기 위해서.“
리디아는 입 모양으로 욕을 했다. 무슨 욕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봐서는 심한 욕인 것이 분명하다.
"춤은 알리샤한테 배웠냐? 그거 춤추는 교양 안 듣지 않았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어.“
"개소리야…….“
나는 입꼬리를 쭉 내리며 울상을 지었다. 이걸 무어라 설명한단 말인가. 사실 나는 올해의 졸업 논문이 반려되어 내년에 스트레스성 위경련과 함께 간신히 졸업하고, 취직을 레드시커 공작가로 했더니 공적인 부분에서 일이 많은 것은 물론이요 사적인 부분에서는 폭풍처럼 온갖 일이 들이닥쳐서 결국 휴직계를 내고 고향에서 쉬고 있다가 어떤 사람과 친해졌는데 그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여러 가지 모험을 하다가 이런저런 일로 결국 원래 세계로 돌아왔는데 무엇이 잘못됐는지 4년 전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지금 이렇게 졸업 논문을 세 번째 쓰게 되었어. 라고 말할 수가 없단 말이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리디아는 올해 졸업하여 제국의 어느 백작 보좌관으로 발탁되었다가 과로와 스트레스,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했다. 그러니까, 절대시간으로 보면 내년에. 온갖 세계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높은 확률로 회귀자, 영혼탈출-육체약탈자(일부 관리자들은 빙의자 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실제로 영혼이 일명 '사후세계'에서 탈출하여 살아있는 사람 혹은 죽기 직전의 사람의 몸을 뺏어 자신이 대신 살아가니 빙의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차원이동자, 환생자 등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회귀자들은 자신의 실수를 바꾸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했다. 나는 딱히 실수를 한 기억이 없으니 대신 나의 룸메이트를 살리는 노력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동안, 리디아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더니 어느새 차를 끓이고 간식을 꺼내 앞에 두었다. 차를 호로록 마셔버린 나는 결심했다. 리디아랑 오래오래 살자. 방금 한 사람을 살리기로 했고, 그 대상은 상대를 바보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차와 간식을 먹는 소리만 들렸다. 그저 오래도록 조용한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