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
w. 달즈비
톡, 토독. 하는 두어 번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바닥에 발을 디디면 다른 세계에 가있는 동안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가 찌르르 하고 전해져왔다. 그에 잠시간 행동을 멈췄다가 이내 다리에 힘을 줘 창문 쪽으로 걸어갔고. 이 어두운 밤을 지켜주려는 듯 마땅히 빛이 새어 들어와야 할 창문을 굳건히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살짝 거두어 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직 어스름한 새벽녘.
가벼이, 하지만 느릿하게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직은 어두컴컴한 어둠이 자리 잡고 있는 밤이라 그런지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아아, 너무 일찍 잠에 들어버렸나. 그런 딱히 영양가도 없고, 재미도 없는 시답잖은 생각들을 하며 창틀에 살짝 기대어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을까. 제 움직임에 잠에서 깨어나 버린 듯 뒤에서 제 보물을 다루 듯 다정히, 또 소중히. 안아오는 익숙한 온기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잘 잤어요?달빛님."
언제나처럼 당신이 있었고. 얼굴 위로 번지는 웃음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당신에게 저는 늘 그랬다. 이상하리만큼 잘 웃고, 더 이상하리만큼. 아이가 된 것 같아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한 번 더 봐주면 안 돼? 한 번만 더 입 맞춰주면 안 될까? 하는. 애정을 못 먹어서, 너의 다정이 조금 더 필요해서 내비쳐지는 어리광. 단 한평생, 정말로 내 인생을 통틀어서 그 어떤 어리광을 부려보질 않았는데. 내가 그런 말을 담을 때면, 너는. 상황이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그리 대꾸했지만. 그래, 설령 그렇다고는 하나. 그래도 전혀 그래 본 적이 없었는데. 이리 다정히 대해 줄 때마다, 행여 자신에게 떨어질까 저를 더 끌어안아내어 푸스스 웃는 소리에 귓가를 간질거릴 때 마다. 붙어있는 살결에서 묘하게, 너의 빠른 심장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가 조금 어리광을 부려도 당신은 저를 좋아해줄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어서.
"응, 잘 잤어요. 달님."
마냥, 웃음이 나왔다. 너는 내 달이었다, 나는 한 점 쓸데없는 빛이었고. 그런 나를, 내가 그저 가지 못하도록 잡아내어 당신에게 비추어낸 덕분에 달빛으로 은은히 밤을 밝힐 수 있게 된 사람이었다. 한참을 그리, 실없이 웃고 있다가 보면 으레 그러했듯 무엇이 그리 즐겁냐는, 말을 담은 나지막하나 느릿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다정히 끌어안은 팔은 더 자고 싶다라는 듯. 나를 저의 것인 것 마냥 더 끌어안았고. 어리광을 부리 듯 어깨위로 얼굴을 묻는 당신의 행동에 저와는 정 반대의 새하얀 머리칼이 제 볼을 간지럽혔다. 방금 전, 어리광을 부리려던 저는 어디로 간 것인지 저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그저 예뻐해 주고 싶은 마음에 손을 살짝 뻗어 너의 머리칼을 살살 쓸어주었을까.
이러한 행동도 좋지만, 얼른 제 질문에 대답해달라는 듯 꾹 안은 손이 슬금슬금, 옷 안으로 저의 맨살을 간지럽혔고. 장난스러운 당신의 손길에도 왜 웃었는지, 말하면 낯간지러워질 것 같은 나머지. 그저 저의 속을 괴롭히는 당신의 손을 살짝 꼬집곤 느긋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너무해…, 진짜 안 알려줄 거야?"
역시나, 오늘은 좀 다를까. 하던 생각이 무색하게 투정이 잔뜩 어려 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당신의 눈을 다시금 내 눈에 머금었다. 가벼이 쳐다보았지만. 저의 눈 안에 들어온 당신이 가지고 있던 푸르디푸른 눈은, 이제 제 색이 섞여들어 반쪽이 되었고. 저 역시 그랬다.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어라 표현해야할지. 저의 짧은 이치로는 다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애초에, 눈을 잃은 것은 저 혼자였는데. 구태여 네가, 같이 짊어져 줄 이유는 없었는데. 이렇게 같이 짊어져버렸으니. 그 사실이 그저 너에게 미안했고, 끝없이 미안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네 눈에 새겨진 찬란한 금빛의 위에 손을 올려 가만히 가려내었을까. 이런 제 행동을 익히 잘 알고 있다는 듯 당신을 바라보는 저에게 살짝 웃음을 짓곤 아무 말 없이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맞춘 당신이 저의 시선에도 고개를 돌려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조용하구나, 조용한 새벽이구나. 너를 따라 어둠이 곳곳에 내려앉은 창밖을 가만히 응시했다. 달의 시선은 언제나 알 수가 없었다. 저는, 너와 같은 의미가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속히, 내려 말하자면 그저 달이 바라보는 세상을 비추면 그만인 달빛이었으니. 그러다 문득, 그래도. 그리 미안해도.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에게 온 너의 푸른 눈이 없었다면, 네가 보는 세상을 내가 비추어도. 나는 보지 못했을 테니까.
우리의 계절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고요하게 지나갔고.
오늘도 여전히,
그저 오래도록 조용한 밤이었다.
